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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교양있는 엔지니어 -Samuel C. Florman 본문
<교양있는 엔지니어 -Samuel C. Florman>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 같은 제목의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4학년 여름계절수업으로 수강한 공학윤리 과목 때문이다. 약 4주간의 수업에서 단 한번 나온 과제이기 때문에 불가피했던 독후감의 대상이 바로 이 책이었다. 최근에 자취방에 비치한 새 책장을 채우는 재미에 중고 서점을 들렀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는 어차피 읽어야 한다는 핑계로 덜컥 구매해버렸다. 책을 읽는 내내 왜 교수님께서 이 책을 읽기를 원하셨는지 확실히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각 챕터가 마치 교수님의 공학윤리 수업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초반부에는 저자 사무엘이 엔지니어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던 경로로 시작하여 공학의 역사와 공학적 관점에서의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무엘은 1925년에 태어났다. 아직 자본주의라는 새 옷을 걸칠 준비를 하고 있던 세상에서 그는 아직 대중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혹은 천한) 직업으로 인식되던 엔지니어의 길로 발을 들인다. 그 시대에 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이후 폭발적인 경제성장 속에서 주역이 되었던 엔지니어들은 공학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뼈대를 기반으로 빠르게 쌓아 올려지고 있던 사회구조와 그 전반에 깔린 위험과 불안정성을 깨닫는다. 공학도 개인의 윤리로서 어렴풋이 존재하던 책임의식은 공론화되어 사회 구성원 다수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규칙이 만들어지게 되고, 이 규칙을 법제화하려는 등의 노력을 통해, 불완전성과 위험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공학일지라도 수용하기 부담스러운 위험으로 대중을 노출시키지는 못하도록 규제장치를 만들게 되는 이야기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공학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알기 쉽게 잘 설명해주는 책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제, 사무엘은 현대사회에서 인식이 개선된 엔지니어를 장래희망으로 삼는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만을 목표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학도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한 공학적 관점에서의 세계관과 공학의 실존적 즐거움에 대해 더 이야기한다. 인문학과 일반교양이 엔지니어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며 이것의 결핍이 야기할지 모르는 현대 엔지니어들의 실수를 걱정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대한 엔지니어가 자라나는 후배들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집필된 것 같았다. 나는 여름방학동안 공학윤리를 수강하면서 그동안 전공을 공부하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전문가’가 가져야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 고민했고 이것은 상당히 신선한 기분을 선사했다. 아마 내가 아직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복권에 당첨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어떠한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칭호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꽤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가깝지 않게 느껴지는 전문가라는 위치처럼, 전문가가 갖춰야할 윤리 의식이란 것 또한 현재의 나와는 꽤나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신에, 책에 제시되어 있던 사례들로부터, 엔지니어로서 맞이할 수많은 고뇌의 순간에 어떻게 양심적으로 행동할 것이며 최선의 선택을 내릴 것인가에 집중하며 수업을 듣곤 했다. 사회에, 젊은 층에 불만이 많아 보이시는 교수님의 짜증 섞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덩달아 짜증이 나곤 했다. 아침부터 힘들게 수업에 와서 멍하니 앉아 수업을 듣고 있는 우리가, 대학생이, 대학이, 대한민국이, 세상이 못생겼다고 느꼈다. 처음 몇 번의 수업에서는 교수님과 함께 화를 내고, 답답해 했지만,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교수님이 우리에게 건네는 일침들에 어느새 스스로 변명을 만들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변명들이 한창 무더기로 생성되던 시기에 이 책을 읽게 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사무엘이 우리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1990년대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무엘은 과연 인문학을 공부하고, 교양 있는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을까 질문했다. 나는 자꾸 억울했다. 나도 교양 있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데, 나도 창의적이며 넘치는 개성과 에너지를 뿜어내고 싶고, 나도 세상을 호령할 야망과 용기를 가지고 피 끓는 청춘으로서 젊음을 불태우고 싶은데, 왜 현실의 나는 매일 아침 휴대폰 알람을 끄며 한숨을 쉬고, 터덜터덜 강의실로 걸어와 흥미 없는 수업을 듣고만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적인 나의 바람과 현실이 부딪히면서 여러가지 변명을 자꾸만 떨어뜨렸다. 물론 이런 비참한 모양새의 학생이 떨어뜨리는 구차한 변명 조각은 티끌 만큼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조차 나를 한번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무한 경쟁시대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재능 없던 공부였지만 능력내에서 최대한의 노력으로 중상위 대학에 입학하여 정해진 커리큘럼을 밟은 나의 현실은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이 별로 였던 것 같다. 참 슬펐다. 그러곤 책을 덮고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책을 펼쳤다. 학점을 받으려면 독후감은 적어야 할 테니까. 다시 펼쳐진 책의 후반부는 그런대로 읽을 만 했다.
다시 한번 공학자로서 임무를 다하고, 해당 분야에 무지한 대중에게 피해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전문가가 된 나를 상상하면서 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재미를 느꼈다. 비단 엔지니어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이 ‘교양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사무엘이 이 책을 쓴 이유가 모든 사회구성인이 교양 있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이익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게 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로서, 사회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또한 사무엘 자신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엔지니어’에게로의 조언을 먼저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영리한 전문가 엔지니어가 되어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을 갖추게 되는 그 날을 상상하며 지금, 학부 졸업이 다가옴에 소홀해지고 있던 전공을 다시 붙잡았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전력질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보처럼 흘러가는 내 인생에 휩쓸려 가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학을 잘 배운 공학도가 됨이 먼저였다.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불안정한 미래를 위한 과도한 계획에 나를 밀어 넣으며 보낸 지난 시간들을 청산 해야했다. 시스템 대로 주어진 소과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해져 인생이라는 대과제 앞에서 어찌 할 바를 모르며 결국 눈앞의 달콤함만 쫒아 세월을 보내온 내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 진취적인 에너지로 무장하여 꿈으로 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건설적인 취미생활로 재충전한다면 아직도 충분히 늦지 않았다. 앞으로 다가올 대학원 생활은 진심을 다하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게 된다.
나는 내가 연구분야에 대한 집중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아 성찰하며 관계에 대한 고찰을 계속하여 인간적으로도 매력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의 양심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고 공학적 선택의 기로에서 최선의 선택을 다할 수 있기를 바라기에 공학윤리 과목은 이러한 기로에서 헤메게 될지 모르는 미래의 내가 조언을 취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학도로서 가져야할 책임의식과 윤리를 정규 커리큘럼에서 교육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사회가 공학 전문가로서 가져야할 소양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며, 이것은 사회전반을 더 안전하게 하고 그것으로 공학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책을 통해 나는 서로 단절되고, 인간미를 잃어가는 공학에게 사람냄새가 가장 많이 배여 있는 인문학을 권함으로써 감성을 통한 사회와 인간에 대한 소통을 의도하는 사무엘을 만났다. 그는 늙고 힘이 없으며 걱정거리가 많다. 하지만 힘없고 비관적이던 한 젊은이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그에게 감사한다. 이제는 우리 세대의 공학도가 사무엘에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물질적인 보상과 사회적 지위만을 위한 공학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단순히 앎으로 그치지 않으며, 이 모든 무기력을 사회의 탓으로 변명하며 회피하지 않고, 실재하는 더 큰 가치를 위해 학문을 정진하는 젊은 우리가 되어야겠다. 미래의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우리 스스로일 때 가장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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