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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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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글로벌한량 2017. 8. 4. 19:09
-글을 시작하기 전에,
 본 독후감에서는 소설 결말부도 언급되므로 스포일러를 꺼리는 분들은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최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적은 것 같아 유익한 모임들을 찾아보다가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사피엔시아'라는 이 독서모임에서 첫번째로 선정된 책이 바로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다. 이 책은 얇고 가벼운 단편소설이다. 사실, 독서모임이 아니면 전혀 손도 안댈 도서였기 때문인지 더욱 기분좋게 책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보후밀 흐라발은 체코의 국민 작가다. 보통 소설을 자주 읽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 바로 책을 펼쳤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폐지 압축공인 주인공 한탸는 지저분한 지하에서 쏟아지는 폐지를 압축하여 폐기하는 일을 한다. 모두가 꺼리는 냄새나고 더러운 일이지만 한탸는 넘치는 폐지들 사이에 종종 끼어있는 진귀한 장서와 고서들을 읽는 그의 직업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 소설 속에서 그는 '뜻하지 않게 현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고된 일들도 자신이 사랑하는 책, 그리고 맥주 몇 통과 함께라면 압축기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그의 지하 작업공간이 가장 아늑하다. 과거의 자기 모습과 그가 사랑했던 두 여인을 회상하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지만 소설의 문체와 묘사법에서 약간씩 드러나는 그의 정신분열적 사고의 돌출은 계속해서 소설이 유쾌한 분위기를 지속하도록 도와준다. 

특이하지만 본인에게는 평범하던 일상도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파란 유니폼을 입고 맥주대신 우유를 마시며 일하는 젊은 공산단원들의 등장이다. 그들은 깨끗한 환경의 공장에서 거대한 압축기에 폐지들을 닥치는대로 던져넣는데, 거기에는 서적에 대한 일말의 흥미도, 활자에 대한 티끌만큼의 예의도 없었다. 하지만 불뿜듯 작동하는 신식 압축기의 작업 효율에 한탸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한탸는 공산단원의 압축공장을 목격한 후 충격에, 폐지더미 속의 장서를 애써 무시하며 막무가내로 일해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가 삼십오년간 해오던 일의 가치와는 전혀 상관 없는 그저 단순반복 노동에 불가했다. 그는 고뇌하다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한권을 들고 스스로 자신의 폐지 압축기에 들어간다.

오랜만에 자기계발 서적 혹은 전공 서적이 아닌 소설을 읽는 것이라 그런지 더욱 재미가 있었다. 소설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 줄거리를 풀어내는 방법에서 오는 즐거움도 상당했다.

나는 그저 컨텐츠의 소비자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어나갔었다. 작가의 집필 당시의 시대상황과 배경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태여서 일반적인 드라마를 감상하듯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었다. 독서모임에서 내용 해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한탸가 어둡고 지저분한 일터에서도 행복하게 일하는 장면에서 아무리 꺼려지는 일이라도 누군가에게는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소중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했다. 한탸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폐지 압축공으로서 한탸가 행복하게 살았던 이유는 많은 책을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이것을 충분히 음미할 여유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효율적인 작업을 추구하는 푸른 작업복의 공산단원들에게 쫒기다 보니 자신이 사랑하던 일의 가치를 더이상 발견 할 수 없게 되고 이 때문에 비극적 결말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개인이 느끼는 노동 가치를 묵살하고 효율만을 내세우는 세상에 대한 한탄이 담겨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독서모임에서는 나와 다르게 저자 보후밀 흐라발의 삶과 연관지어서 해석해주시는 분이 계셨다. 체코의 국민 작가인 흐라발은 "나는 이 작품을 위해서 세상에 나왔다!" 라고 말할 정도로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의 특별한 애착은 흐라발이 자신을 이 작품에 투영던 것에서 온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가 작품을 쓰던 시기의 체코는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고통받고 있었는데, 그가 살던 도시 프라하는 나치에 의해 점령당해 특히나 더 공포에 떨아야 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죽여야 했던 그 시기의 체코를 지하의 더럽고 침침한 폐지 압축공장에 비유하였고 무기력한 그 곳에서 한줄기 희망이 되는 맥주와 압축될 폐지더미에서 양서를 찾아 읽는 일이 곧 흐라발이 글을 쓰는 일이다. 과거의 찬란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소설 중반, 똥과 함께 희화되는 옛 연인 만차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젊은 시절 바보같은 행동에 놀림거리가 되곤 했고 지식 수준도 낮지만 중년이 된 그녀는 한탸와 다르게 커다란 저택의 주인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고 한탸는 그 사실에 은연 중에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지적, 정신적 향유가 제일이라 믿었던 가치관에 혼란이 오는 것이다. 독서모임의 한 구성원은 이 소설을 액자식 구성이라고 해석하셨다. 한탸는 흐라발 자신이며, 그의 일생을 그려내고 그것을 책과 함께 압축하므로써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럴듯 하다.

전체적으로 문장의 구성을 비롯한 책의 줄거리가 사람을 빠져들게하는 마력이 있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책이었고, 특히나 독서모임을 처음 하면서 여러 관점에서 이 소설을 해석할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다른 기회가 또 온다면 보후밀 흐라발의 책을 더 접해보고 싶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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